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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식 스토리
공로상 Achievement Award : 임정식 Yim Jungsik
  • 작성일2023/09/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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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상 Achievement Award : 임정식 Yim Jungsik

 

 

기본과 세상을 읽는 감각의 ‘맛남’
정식당

 

<정식당>의 역사는 한식 또는 한국 레스토랑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역사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정식 셰프는 뉴욕 CIA에서 요리를 공부한 뒤 2000년대 초반 미식 강국으로 두각을 드러낸 스페인에서 근무하며 분자 요리 등 전통을 재해석한 뉴 스패니시 퀴진에서 영감을 얻고, 2009년 귀향해 ‘뉴 코리안’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이어 2011년에는 당시 유행을 선도하던 뉴욕에 지점을 열어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쉽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아 폐업을 고민한 적도 있지만, 임정식 셰프는 휴일도 반납하는 열정으로 정진해 결국에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쉐린 2스타를 받는 기염을 토했다. <정식당> 출신 셰프들은 그의 뒤를 이어 <아토보이ATOBOY>, <아토믹스ATOMIX>, <주아JUA> 등 뉴욕 미식 신에 한식을 더욱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서울미식을 넘어 한국 미식과 한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임정식에게 요리란 무엇일까.

 

 

 

<임정식 바텐더>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어렸을 적 집에서 혼자 라면에 이것저것 넣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셔서 먹을 복 많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며 주방이라는 공간을 경험했다. 난생처음 돈가스도 튀겨보고 어마어마한 양의 양파를 썰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에 대한 열정을 느낀 때가 이 시기가 아닐까 싶다.

 

CIA를 졸업한 후 뉴욕의 <아쿠아비트AQUAVIT>와 <불뤼BOULEY>, 스페인의 <수베로아ZUBEROA>, <아켈라레AKELARRE>에서 수련했다. 당시 해외 스타 레스토랑에는 한국인 요리사가 많이 없었을 텐데.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 해외 키친은 새로움투성이였다.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적으로 힘든 적도 없었다. 스페인은 당시 미식 강국으로서 주목받았기에 배울 점이 많았다. 인종차별이야 당했지만 다들 나보다 어려서 이해했고, 내가 일을 잘하니 나중에는 나에게 일을 배우려고 했다.

 

지금의 임정식과 <정식당>이 있기까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레스토랑이 있다면.

해외 키친 중 마지막으로 경험한 <수베로아>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따뜻했다. 힐라리오 아르벨라이츠HILARIO ARBELAITZ 셰프는 50년의 요리 인생을 마치고 작년에 은퇴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주방에 서 계셨다. 그 꾸준함을 존경한다. 성정이 따뜻한 분이었고, 날 많이 좋아해주셨다. 사실 <정식당>은 그곳에서 일할 때 10분 만에 구상한 레스토랑이다. 디너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문득 ‘서울로 돌아가면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분자 요리에서 영감받아 뉴 코리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업장명도 그때 정했다. 어리고 무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이후 복분자 젤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메뉴를 개발했다.

 

 

 

 

2009년 서울에, 2011년 뉴욕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한식 다이닝을 오픈했다.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나.

없었다. 뉴욕 지점은 오픈 초기에 정말 힘들었다. 손님도 없었고 미디어의 관심도 못 받았다. 폐업하기 직전에 극적으로 미쉐린 1스타를 받았는데, 그때야 서서히 알려지고 있음을 체감했다. 이후에 잘 안돼서 또 다시 문을 닫을까 고민하던 중 미쉐린 2스타를 받았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013년부터는 10년째 만석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정부에서 K-팝과 한식을 세계에 적극 알려온 것도 큰 몫을 해준 것 같다.

 

뉴욕 <정식> 오픈 이후 2015년 <오이지>부터 2016년 <아토보이>, 2017년 <꽃>, 2018년 <아토믹스>, 2022년 <오이지 미> 등이 뒤따라 오픈하며 뉴욕에 본격적인 한식 레스토랑 바람이 불었다. 또한 훌륭한 후배들을 양성했다. <정식> 출신의 <아토보이>,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 <주아> 김호영 셰프 등이 뉴욕에서 한식을 알리고 있다. 김경문 소믈리에는 전 세계에서 3백 명이채 안되는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었고, <리제>를 운영 중인 이은지 페이스트리 셰프는 두터운 팬덤을 형성한 촉망 받는 영셰프로 통한다. 그들과 함께 일할 때의 추억을 들려달라.

그때는 참 힘들게 일했다. 요즘 레스토랑은 주 5일 근무하지만 그 시절에는 일주일 내내 일했다. 원래는 5.5일 근무인데 내가 쉬는 날에도 출근해 메뉴를 개발하니 후배들도 다 출근하더라. 돌이켜보면 피 끓고 열정 넘치는 젊은 셰프들이 함께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정식당>이 있는 것 같다. 성실함을 일부러 가르친 적도 없다. 고맙게도 본래 성실한 후배들이 모였던 것이다. 올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오른 <센트럴CENTRAL>의 정상 총괄 셰프도 뉴욕 <정식> 출신이다.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당시 공석이 없어서 전단지 돌리는 일부터 맡겼다. 다들 훌륭하게 성장해줘서 정말 자랑스럽다. 앞으로 더 잘됐으면 좋겠다.

 

당신에게 <정식당>이란 어떤 의미인가.

인생의 첫 도전이자 데뷔였다. 지금까지 나를 대변하는 세 글자다. 미국에서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의 유명한 레스토랑을 경험하면서 내 고향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식당을 오픈하길 꿈꿨는데, 그 실체인 셈이다. 벌써 15년이 흘렀다. 아직 성장 중이지만 그래도 색다르고 맛있는 요리와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꽤 괜찮은 식당이라고 생각한다. 오픈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 끊임없는 숙제를 내주는 스트레스 덩어리면서도 동시에 살아갈 에너지를 생산해주는 무한 리필 주유소 같다.

 

오랜 시간 요리하며 가장 중시하는 철학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이 기본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훌륭한 요리라고 할 수 있듯이 요리사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돌하르방 디저트, 김밥>

 

 

카프레제 샐러드를 비빔밥 스타일로 만들어 먹는 ‘비빔’, 불고기밥을 바삭한 김부각으로 감싼 ‘김밥’ 등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한식 메뉴로 주목받아왔다. 요리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얻는다. 해장국집에서 먹은 김치와 감칠맛 가득한 국물 요리, 화려한 파인 다이닝의 요리, 수산시장 등 가리지 않는다. 하루 세 끼, 그냥 먹으면 식사일 뿐이지만, 생각하며 먹으면 그 요리가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한 가지 요리를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것만 먹고 그것만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그 요리에만 집중하면 모든 순간이 나의 영감이고 기회가 된다.

 

메뉴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요리에서 출발해 기본적인 맛을 유지하면서 살짝 변형하는 것. 리디자인이라고 할까. 사람은 낯선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알고 있지만 약간의 새로움이 가미된 것에 열광한다. 너무 위험한 도전은 하지 않는다. 젊을 때는 매번 새롭게 만들려는 도전 정신에 휩싸이곤 했는데, 경험이 쌓이면서 어떤 시도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성공률은 높아졌다.

 

 

 

 

 

지난해 CIA에서 개최한 동문 시상식에서 수상했다고 들었다.

2022 CIA 리더십 어워드 ‘글로벌 퀴진의 챔피언’ 상을 수상했다. 세계 각국에서 요리를 통해 이해와 사랑을 나눈 공로를 치하하는 상이다. 감사하게도 수상자 6명 중 한 명이었다. 트로피의 무게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새 ‘혼자’이던 시절에서 모던 한식 레스토랑 장르의 선구자가 됐다. 앞으로 선배로서, 선구자로서, 또 동료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을 앞으로도 꾸준히 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최근에는 레스토랑을 돌아보며 고치고, 안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초창기 직원6명에서 지금은 60명이 함께일하는 곳이 되었기에 직원 복지에도 힘쓰고 있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시스템을 찾기 위해 계속 탐구 중이다.

 

 

지난 15년간 이 무한 경쟁의 무대에서 수많은 업장이 뜨고 지는 것을 지켜봤다.   

래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인 요리 능력은 물론 세상을 보는 시야도 열심히 키워야 한다.

 

제2의 임정식과 <정식당>을 꿈꾸는 후배 셰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영원한 1등도 없고, 영원한 꼴찌도 없다는 것. 대한민국 외식업계는 전 세계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고 느낀다. 지난 15년간 이 무한 경쟁의 무대에서 수많은 업장이 뜨고 지는 것을 지켜봤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인 요리 능력은 물론 세상을 보는 시야도 열심히 키워야 한다. 그래도 무엇보다 스스로를 혹독히 밀어붙이지 않길. 비교하는 행위는 불행의 지름길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요리를 사랑하라. 용기를 가지고 ‘내가 최고다’라는 마인드를 장착하길 바란다. 그래야 롱런할 수 있다.